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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칼럼] 정전(停戰) 60년, 그리고 한국문학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
숱한 문학인 전쟁의 참극에 사라져
분단의 시대 정신적 지표 제시해와
  •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6·25가 휴전협정에 의해 끝난 지 60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처칠이 남긴 말이 생각난다. ‘전쟁은 커튼과 같이 미래를 가리고 있다. 커튼이 걷혀야 비로소 무대의 장면을 알 수가 있다.’ 지금은 아득한 옛날 일처럼 밀려나버린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정전(停戰) 이후 한국사회의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생각한다면 이 전쟁의 의미를 문화적 차원에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권영민 문학평론가
    한국전쟁은 잃어버린 문학의 시대를 낳았다. 전후문학은 숱한 문학인의 이름을 전쟁의 참극 속에 묻어버렸다. 이광수가 북으로 끌려갔고, 정지용과 김기림이 사라졌다. 박영희, 김동환 등이 없어졌고, 서울에서 끌려간 박태원은 평양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위에는 다시 찾을 수 없는 이름이 상처처럼 남겨졌고 ‘인공(人共) 부역(附逆)’을 따지는 위태로운 이념 논쟁을 한바탕 치러야만 했다. 해방 직후에 만끽했던 민족적 감격과 새로운 민족문학을 꿈꿨던 희망과 열정이 사라졌다. 문학예술의 사회적 기반이 모조리 파괴된 회색지대에서 한국문학은 정신적 좌표를 잃은 채 그 가치의 공백상태를 모면할 수 없게 됐다.

    한국전쟁은 남북 분단을 고정시키고 이념적 대립을 지속시킴으로써 민족적 동질성을 훼손하고 민족문학의 이상을 무너뜨렸다. 정전 이후 문학은 전후 현실의 황폐성과 삶의 고통을 개인의식의 내면으로 끌어들이게 됐지만, 이념의 허구성을 정면으로 파헤치지 못한 채 정신적 위축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남북한의 민족적 동질성에 대한 인식도 점차 흐려지고, 분단 자체를 당연시하는 의식도 생겨났다. 전후문학의 첫 장면을 보면 민족분단의 상황이 만들어낸 ‘분단문학’의 징후가 문학사의 전면에 포진해 있다.

    한국문학은 1950년대 후반에야 전후 현실의 불모성에 저항하면서 전쟁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인간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에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전후문학이 보여주고 있던 피해의식과 정신적 위축은 1960년 4·l9혁명을 거치면서 현실적으로 극복되기 시작했다. 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의 변화는 한글세대의 문단 등장과 함께 가능해졌다.

    소시민적인 삶과 그 내면의식에 대한 추구 작업에 매달렸던 문학이 그 주제의식을 사회적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하기 시작하자 순수와 참여 논쟁을 거치면서 문학의 사회적 기능과 그 가치에 대한 전망이 확장됐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정치적 상황 변화와 함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 접어들자 문학은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놓치지 않았다.

    전쟁의 장막이 걷힌 후 한국문학은 격변하는 현실 속에서도 예리한 비판의식과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정신적 지표를 제시해 왔다. 민족과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깊이 있게 인식하고 그 역사적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데도 문학의 역할이 컸다.

    한국문학은 분단 상황에서 빚어진 사회적 모순을 정신적으로 극복하면서 문학 자체의 위상을 스스로 정립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가장 빛나는 문화의 중심 영역이 됐다. 한국문학이 민족 전체의 문학으로서 지닐 수 있는 미적 가치와 기준을 확립하면서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세계를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게 된 것이 어찌 문학인만의 공력이겠는가.

    권영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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